쉬운 결제, 쉬운 환불

물건을 살 때 몹시 신중하게 사는 편이다.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건 돈을 지불해야하는 일이라면 내 머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구매를 결정한다.

1. 지금 가진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가? 

집구석에 처박힌 물건들, 부모님 댁에 두고 온 물건들, 누군가에게 빌려줬던 물건들을 모두 떠올려본다. 대체할 것이 없는지도 생각해본다.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본다. 사실 이 과정은 구매를 생각할 때 이미 넘어서있다. 최대한 가진 것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는데 안되니까 구매까지 생각이 가는거다.

2.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내가 혹시 새로운 물건이 가지고 싶어서 이러는건가? 아니면 정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물건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 물건을 사면 내가 만족할 것인가? 다른 더 좋은 것이 있는 거 아닐까? 스스로에게 이런 많은 질문을 던지며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3. 어느 수준의 품질을 원하는가?

어떤 물건이건 품질의 차이가 다양하다. 아주 고급부터 아주 저급한 것까지, 이 들 중에서 나에게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찾는다. 가능하면 허용가능한 품질에게 가장 싼 물건을 고르려고 한다. 하지만 원하는 품질에 도달하지 못하면 후회하기 때문에 절대 품질에서 많이 물러서지 않으려고 한다.

4. 이 물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거 맞는가?

1, 2, 3의 과정을 거쳐서 고른 물건을 다시 한번 원점에서 점검한다. 이거 사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고 만족하게 될까? 혹시 없어도 되는데 사고 싶은 충동때문에 사는 거 아닐까? 괜히 샀다가 후회하는거 아닐까?


누가보면 아주 쓸데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생각이 저절로 머리에 쭉 들어온다. 뭔가 타고난 성향이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이렇게 주절주절 정리하는 이유는 최근에 산 '와치독스2' 때문이다. '와치독스1'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2편도 위 4가지 생각을 거쳐서 구매를 했는데 조작감도 좋지 않고 스토리도 맘에 들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이 원하는 시스템 최소요구사항에 내 컴퓨터가 미치지 못하는 거였다. 컴퓨터로 게임을 많이 안해봐서 그래픽카드에 대해서 무지했다. 모델넘버가 크면 더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사용하고 있는 GTX 750 Ti는 와치독스2가 원하는 GTX 660보다 성능이 약 28% 부족했다. 심지어 8GB의 메모리도 부족하다는 알림이 나왔다. 가뜩이나 익숙치 않은 조작이 부족한 성능때문에 더 버벅거렸고 아름다운 화면이 강점 중 하나인 게임이 모든 옵션을 꺼버리니 1편보다 못한 화면을 보여줬다.

할 맛이 뚝 떨어졌다. 머리 속에선 자연스레 그래픽카드를 하나 살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20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원하는 것을 구매 가능했다. 1,2,3의 과정을 거쳤지만 문제가 없었다. 4의 과정에서 딱 부딪혔다. '와치독스2'를 안한다면 이게 필요한가? 필요없다. 게임을 포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나은 성능의 컴퓨터가 생길테니 그때해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임을 포기하니 한구석에 찜찜함은 남았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던 중 스팀 구매목록에서 환불요청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환불은 생각도 못했다. 디지털 제품은 환불이 안되는 줄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불을 시도해봤는데 '플레이 시간이 길면 환불요청이 거부'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 플레이를 해도 환불이 가능? 나는 고작 3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했으니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시스템 요구사항에 못 미쳐서 게임을 못하겠다'고 사유를 적어서 요청을 했다. 요청은 얼마안가 접수되었고 하루만에 환불처리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스팀은 결제할 때도 미리 등록한 카드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구매가 가능했는데 환불도 이렇게 쉽게된다. 너무 놀랐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면 돈을 받는 방법은 쉽게 만들어도 돌려주는 방법은 어렵게 만들기 마련인데 스팀은 그렇지가 않다. 앞으로는 데모 플레이 같은 걸 해봐서 확실히 재미있을때만 구매를 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쉽게 해준다면야 나의 기나긴 고민의 과정을 조금 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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